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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영화

어톤먼트(Atonement), 가장 아픈 사랑에 공감하다.

어톤먼트(Atonement)? 영어? 한국어?

 한 단어의 명사로 된 영화 제목은 흔하지만, 영어권 국가의 영화 제목은 아무래도 번역하기 쑥쓰러울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조시 트랭크 감독의 [CHRONICLE](2012) 같은 영화는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연대기] 가 되죠. 영.. 알아듣기 어렵죠.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SIGN](2002) 의 경우에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징후] 가 됩니다. 아무도 안 볼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나죠. 샘 레이미 감독의 [Spider-Man](2002) 은, 번역하면 [거미인간]이라는 닭살이 훅 돋는 특촬영화 - 특수촬영 영화의 준말로, 울트라맨이나 파워레인저같은 시리즈를 통칭하는 말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 수준의 제목입니다. 하다못해 [울트라맨] 같은 류의 특촬영화도 직역하자면 [초인] 같은 유치뽕짝 제목이 되기 일쑤죠. 그래서인지 영어로 된 영화제목들은 대부분 [어톤먼트]처럼 영어 발음을 그대로 한글로 옮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톤먼트(Atonement)]는 '속죄'라고 해석하면 가장 근접한 해석일 듯 합니다. 극의 제목인 [어톤먼트]는 극중에서 세오즈 로넌(Saoirse Ronan, 브라이오니 역)에 의해 쓰여진 소설의 제목입니다. 보통은 영화의 제목을 결정할 때 주인공의 특징이나, 주인공의 입장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사물 등으로 결정하고는 하는데, [어톤먼트]의 경우에는 극중 '브라이오니'가 쓴 소설 제목이 영화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전면에 내세워진 배우들은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 세실리아 탤리스 역), 제임스 맥어보이(James McAvoy, 로비 터너 역) 두 사람이지만 제목을 결정한 건 세오즈 로넌(Saoirse Ronan, 브라이오니 역) 이랄까요.

 영화의 제목만 언뜻 봐서는 '이거 무슨 남자가 잘못하고 여자한테 비는 내용임?'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직관으로 영화를 추측하는(저같은) 류의 사람은 제목을 보고 그렇게 이해하기 쉽죠. 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제목만 보고 내용을 추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각색하는 것이 형편없는 책을 각색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조 라이트 감독은, "책은 사람들에게 많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영화는 직접 스크린으로 환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영화와 소설은 아주 다른 작업이다" 라고 말하면서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업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독은, 각색의 파트너로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햄튼을 지목했습니다. 문단의 제목은 크리스토퍼 햄튼이 [어톤먼트]를 제작하면서 한 말이죠. 크리스토퍼 햄튼은 이언 맥큐언의 동명 원작을 근 20년간의 최고 수작으로 여긴다고 말하면서, 원작의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꼈다고 합니다. 조 라이트 감독과 극작가 크리스토퍼 햄튼이 원작 소설[어톤먼트]를 '경외'하다시피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아마도 이런 '경외감'이 이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빤 강남 스타일? 누난 귀족 스타일!

 영화의 시작 배경이 되는 1930년대 영국의 대저택은, 호화롭기 그지없습니다. 전쟁 이전의 여유롭고 부유한 삶을 누리는 영국의 모습이기도 하죠. 이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서 프로덕션 디자이너 세라 그린우드가 영국 전역을 뒤져내서 저택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이 저택의 실명은 '스토크세이 저택'이라고 하네요. 저택은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부도 호화롭습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극에서 도도하고 아름다운 여인 '세실리아'역을 훌륭하게 연기합니다. 가녀린 몸매와 큰 키, 또렷한 이목구비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1900년대 초반의 상류층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 비주얼은 [오만과 편견](2005)에서 보여주었던 그녀의 연기력과 맞물려 영화 내내 그녀를 완벽하게 '세실리아'로 만들고 있습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리처트 커티스 감독의 영화 [러브 액추얼리](2003)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렸고,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서도 강인하면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귀족에게 필요한 두가지,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모두 갖춘 '공인된' 귀족전문 배우가 된 셈이죠.

 안톤 후쿠아 감독의 영화 [킹 아더](2004)에서 귀네비어 왕비 역,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 베넷 역, [캐리비안의 해적]시리즈에서 엘리자베스 스완 역, 사울 딥 감독의 영화 [공작부인:세기의 스캔들](2008)에서 데본셔 공작부인 역 등등 수많은 영화에서 귀족 여인의 역할을 싹쓸이(?)하다시피 할 만큼 그녀의 이미지는 귀족스럽습니다. 워낙 귀족적인 이미지가 풍기는데다 연기까지 귀족같이 하는 만큼, 여러 감독들의 '귀족역할 러브콜'을 받는게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조 라이트 감독도 그녀의 귀족적 이미지, 또 [오만과 편견](2005)에서 함께했던 그녀의 연기력을 떠올렸는지 [어톤먼트]에서도 그녀에게 자연스레 러브콜을 합니다. 조 라이트 감독은 [어톤먼트] 이후에도 [안나 카레니나](2012)에서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 역에 그녀를 또 낙점하죠. 아무래도 키이라 나이틀리의 귀족적 이미지는 앞으로도 오래 이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류층 여인을 사로잡는 그 남자, 비법은.. 평범함?

 제임스 맥어보이(로비 터너 역)는, 사실 평범한 편입니다. 보통의 몸매에, 보통의 몸집. 175cm의 키는 여타 서양 남자 배우들에 비해서 외려 작은 편으로 여겨지는 키죠. 그런 그는 극중에서 도도한 상류층 여인을 사로잡는 순수한 청년을 연기합니다. 극중 '세실리아'는 '로비'와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서로의 감정을 숨기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로비'가 실수로 보낸 음탕한 편지에 '빵' 터지고 말죠. 이런 평범함과 음탕함(?)이 '세실리아'를 사로잡은걸까요? 한가지 간과하고 있었네요. '로비'는 얼굴이 참 잘생겼네요. 역시 외모가 중요합니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영화 [The Near Room](1995)으로 데뷔했습니다. 우리나라 팬들에게는 아마도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영화 [원티드](2008)로 가장 많이 알려졌을 것 같네요. 꾸준하게 연기생활을 다져온 제임스 맥어보이는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또 많은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는 핸섬하고 순수한 이미지에, 역시 키이라 나이틀리처럼 귀족스럽기도 해서, 줄리언 제럴드 감독의 영화 [비커밍 제인](2007), 마크 팔란스키 감독의 영화 [페넬로피](2006) 등에 출연했습니다. 재밌는건, 그 잘생긴 외모로 앤드류 아담슨 감독의 영화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2005)에서 반인반수 '툼누스'역으로 출연했다는 사실입니다. 털복숭이 맥어보이의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감상하시는것도 좋겠네요(웃음).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조작한다

 포스트 제목에서도 언급했듯, [어톤먼트]는 가슴아픈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사랑을 아프게 만드는 것은 또다른 사랑이죠. 극중 '브라이오니'(세오즈 로넌 분)는 어린 나이에 사랑의 설레임을 경험합니다. 자신의 첫 희극작품이 완성되자 기쁨에 가득차서 분주히 움직이던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집 현관문 앞에서 신발끈을 고쳐매는 '로비'에게 무심한 듯 시크하게 말합니다. "(연극)보러 올 거야?"

 '브라이오니'의 눈은 어디로 향해야 할 지 모르는 듯, '로비'와 정면을 번갈아 봅니다. 그리고는 이내 '가봐야겠다'며 휙 돌아서죠. 그러나 '로비'를 향한 '브라이오니'의 풋풋한 감정은 멈추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멈추어야 하는지, 계속해야 하는지도 모를 나이이기 때문이죠. 언니 '세실리아'와 자신의 희극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문득 '로비'의 이야기를 꺼내고 마는, 그야말로 풋풋한 소녀의 순수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풋풋한 만큼,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제어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사춘기 소녀의 불안한 감정상태는 자신의 희극 배역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납니다. '롤라'가 주연 욕심을 부리자, 자신이 주연을 맡으려 내심 작정하고 있던 '브라이오니'는 엉겁결에 '롤라'에게 주연을 허락합니다. 쿨하게 넘어가는 듯 하다가, 이내 '롤라'가 대본을 읽자고 종용하자 발끈하고 말죠. 어린 시절부터 자라온 상류층 집안의 분위기 때문인지, 사춘기 소녀 '브라이오니'는 글을 쓰는 차분한 귀족처럼 스스로를 제어하려 합니다. 그러나 섣부른 자기제어로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속에서는 분노를 느끼는  상태가 되죠. 자신의 분노를 정당한 모양으로 포장해서 표출합니다. 아마도 이 때 부터 이미 불행은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라이오니'는 우연히 '세실리아'와 '로비'의 만남장면을 목격합니다. '로비'의 실수로 떨어진 화병 조각을 찾으러 '세실리아'는 속옷만 입은 채로 분수대의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이 때 '브라이오니'는 언니 '세실리아'가 옷을 벗는 순간의 장면만을 보고 오해를 품게 되죠. 자신이 좋아하는 '로비'가 언니 '세실리아'와 만나는 장면, 그리고 언니 '세실리아' 가 옷을 벗는 장면에서 '브라이오니'는 상처를 받은 듯 합니다.

 한편 이 다툼으로 '세실리아'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로비'는 그녀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 실수로 다른 편지를 봉투에 넣고 맙니다. 그 편지는 재미삼아 음탕한 단어들을 사용해서 쓴 편지죠. '브라이오니'는 '로비'가 언니 '세실리아'에게 편지를 썼다는 사실에 궁금함과 질투를 참지 못하고 편지를 열어봅니다. 그 안의 음탕한 단어들을 본 '브라이오니'는 '로비'를 성도착증 환자로 오해하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로비'를 성도착증 환자로 몰아버린 듯 합니다. 물론 '브라이오니' 스스로는 그 미묘한 심리를 알지 못합니다.

 이후 '세실리아'는 '로비'와 만나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서재에서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결정적으로 이 장면을 '브라이오니'가 목격하면서 '브라이오니'의 질투는 분노로 변합니다. 두 사람이 나간 후에 차갑게 변하는 '브라이오니'의 표정에서 그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 그날 저녁, 저택의 사람들은 어린 두 쌍둥이 남자 아이들이 가출선언을 하고 집 밖으로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을 찾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정원을 수색하게 되고, 어두운 정원을 헤메던 '브라이오니'는 '롤라'가 어떤 남자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남자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롤라'는 얼버무립니다. 그러자 '브라이오니'는, 자신이 그 남자를 보았다면서, 그 남자가 '로비'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로비'가 저녁식사 전에 '세실리아'도 겁탈했다고 말합니다.'롤라'도 그 말을 믿게 되면서, '로비'는 강간범으로 몰리게 됩니다. '사람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픈 기억을 바꾸어 기억한다'는 어느 심리학의 이야기처럼, '브라이오니'는 '세실리아'와 '로비'의 격정적 로맨스 장면을 '로비'의 일방적 겁탈로 바꾸어 머리속에 저장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로비'에게 상처받은 것이 아니라, '로비'가 나쁜 놈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로비'를 강간범으로 확신함으로써 그를 향한 분노를 자신도 모르게 표출합니다.




여기서 '브라이오니'의 심경, '롤라'의 상황에 대한 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더보기). 원작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의 장면만으로 해석하는 것이므로 혹여 읽으시다가 심경이 불편하시거나 동의가 불가능하신 분들은 너그러이 이해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영화 보실 분들은 나중에 읽으세요).

 결국 강간범으로 몰린 '로비'는 감옥에 가게 됩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단 한 번의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바로 그 날에, '로비'와 '세실리아'는 헤어지게 되고, 이렇게 둘은 엇갈린 운명의 길을 가게 됩니다. 몇 년 후, '로비'가 감옥에 있는 동안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로비'는 감옥과 전장 중에 선택하도록 강요받습니다. 당연히 감옥보다는 전장이 낫기에, '로비'는 전장을 택합니다. 


 가슴 시린 사랑은 이제부터

 '세실리아'는 '로비'가 전쟁터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간호사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세실리아'의 노력으로 '세실리아'와 '로비'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이 때, 너무 오랜 시간동안 서로를 그리던 두 사람은 반가움을 한 마음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어색함을 품고 있습니다. '로비'의 커피 취향을 잊은 '세실리아'가 민망해하자, '로비'는 남에게 말하듯 "괜찮아요. 두 스푼이에요." 라며 거리를 둡니다. '세실리아'가 용기를 내어 '로비'의 손을 잡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빼내면서 또다시 거리를 둡니다. 자신을 모함한 '브라이오니'의 가족인 '세실리아'에게 어제 만난 것 처럼 하기가 쉽지 않은 탓도 있지만, 억울한 감옥 생활을 하다가 전쟁터로 끌려간 마음의 상처도 보탬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실리아'가 30분 후에 병원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말하자, '로비'는 자신도 모르게 아쉬운 마음을 툭, 말해버리고 말죠. 그 때 두 사람의 마음 속에 있던 그동안의 후회들, 감옥에서 면회가 허락되었다면 매일 찾아갔을 것이라는 '세실리아'의 말과, 그 때 서재에서 그렇게 사랑을 나누지 않았더라면, '브라이오니'가 보았던 그 장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로비'의 말이 오갑니다. 그러다 '세실리아'가 이렇게 말하죠. "돌아와요, 내게 돌아와요" 라고. 이제 '로비'의 마음도 완전히 녹아내리고, 둘은 '세실리아'의 친구 별장에서 휴가를 함께 지내기로 합니다. 이후부터는 '로비'역시 세실리아를 만나기 위해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 기를 쓰게 되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전쟁터에서의 '로비'는 '세실리아'와의 재회를 기약하며 외롭게 전장을 거닙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장면이 등장합니다. 전쟁 후에 철수를 기다리는 해안가의 군인들, 그 처량하고 처참한 모습 속에서 '세실리아'를 그리며 전장을 헤메는 '로비'의 모습이 대비되며 무려 5분30초 가량을 한 번도 편집하지 않고 롱 테이크로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정말 영화 팬이라면 꼭 보시기를 권장드리고 싶네요. 단 한번도 편집되지 않은 5분 30초의 롱 테이크. 조 라이트 감독은 이 장면을 위해 열두시간의 리허설과 꼬박 하루라는 촬영시간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엑스트라만 2천명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통제하기 힘든 장면을 싱글샷으로 담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이 즈음에서 '로비'의 '세실리아 앓이'는 극에 달합니다.




[어톤먼트]안의 '속죄'

 이제 나이를 조금 먹은 '브라이오니'는 자신이 '로비'에게 한 짓이 어떤 짓인지를 깨닫습니다. 전장에서 언니 '세실리아' 처럼 간호사로 일하면서 무언가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쓰죠. 그러면서 자신이 한 일들에 대해 속죄하기를 원합니다.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에게 말이죠. 간호사 일을 하면서 밤에는 글을 쓰기를 계속합니다. 속죄받지 못할 자신의 행동을 떠올리면서 손을 지나치게 세게 문지르며 씻는 등 옛날의 실수가 그녀에게 계속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어톤먼트]에서, 속죄는 '브라이오니'의 몫입니다.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는 어린 사춘기 소녀 '브라이오니', 자신의 감정을 방어하기 위해 사랑했던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버린 그녀. 그녀 때문에 '세실리아'와 '로비'의 운명은 영원히 달라지게 됩니다. 그 달라진 운명의 모습을 보면서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행동을 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죠. 그것이 심지어는 무슨 짓인지도 모르고 했던 '브라이오니'는, 참혹한 결과에 번번히 후회합니다. 이 영화의 제목 [어톤먼트]의 뜻처럼, '브라이오니'는 평생 씻을 수 없을 그 행동을 씻기 위해서 살아가겠지만, 그 행동을 씻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또다시 그 행동을 '속죄'하기 위해, 그녀는 살아가는 것이죠.

 이 영화의 마지막은 '속죄'라는 키워드로 향합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종반부에 대한 묘사는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종반부의 결론은 직접 보시기를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이 걸출한 감독이 표현한 멋진 소설이 어떻게 결론나는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영화 [어톤먼트]가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답게 '세실리아'와 '로비'의 사랑을 표현하며, 얼마나 진중하게 '브라이오니'의 참회를 표현하는가 이니까요.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조명하다

 조 라이트 감독의 출중한 면이 아마도 내면묘사인 것 같습니다. 여러 장치와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내면을 심도있고 교묘하게 묘사합니다. 위에서 심도있게 설명했듯이 개인적으로 소녀 '브라이오니'의 내면에 대한 묘사와 '브라이오니'와 '롤라'의 필요의 공통분모가 창조되는 부분, 그리고 두 사람이 삼년 반 만에 재회해서 참았던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5분 30초의 롱 테이크 샷까지 더한다면, 아주 걸출합니다. 감독이 의도한 바가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중요하지만, 이런 내면의 미묘한 변화를 묘사했다는 사실이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과연 영국 아카데미(BAFTA)에서 14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작품 답다고 느껴집니다. 2012년작 [안나 카레니나] 역시 조 라이트 감독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조합인 만큼 더더욱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만큼의 영화라면, 원작은 얼마나 더 대단할지 가늠하기 어렵네요. 원작소설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