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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영화

50/50, 조셉 고든 레빗의 유쾌한 암 투병기 (한글자막 첨부)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글자막은 포스트 맨 하단에 있습니다)


 조셉 고든 레빗, 이제는 그 이름만으로도 빛나는 배우가 된 그의 연기는 여러 영화에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영화 [50/50]은 조셉 고든 레빗의 호연이 빛나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조셉 고든 레빗에 대한 평을 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지겠지만, 영화 [50/50]를 보는 것으로 그 평을 대신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영화 [50/50]에서 보여주는 조셉 고든 레빗의 연기는 훌륭합니다.

 영화 제목 [50/50]는 Fifty fifty 라고 읽으며 한국어 제목은 [50대50]입니다. 짐작할 수 있듯 50대50의 확률, 즉 반반의 확률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극중 암환자 '아담(조셉 고든 레빗 분)'의 생존 확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착한 남자에게 닥쳐온 인생의 아이러니

 영화 [50/50]의 전반적인 플롯은 암 투병과 그것을 극복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만, 영화 [50/50]는 단순한 암 투병기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50/50] 속 아담의 투병기가 특별한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극중 아담의 나이가 스물일곱살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과, 아담이 걸린 암의 종류가 매우 희귀하다는 것, 그리고 아담은 매우 착하고 바르게 생활하는 사나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매우 젊고, 착한 바른 청년입니다. 스물 일곱의 나이로, 신호등을 꼬박꼬박 지키며, 따뜻한 미소를 가졌으며, 여자친구를 배려할 줄 아는 남자입니다. 이것 뿐이라면 억울하지도 않겠죠. 심지어 아담은 술과 담배도 전혀 하지 않으며, 자동차 사고의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을 들어 운전면허를 따지 않았을 정도로 안전에 유의하는 사람입니다. 회사에도 친구 차를 얻어타고 출근하죠.



 아담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면 전혀 암같은 병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건강하게 살 사람이 없을 것 같을 정도죠. 인생지사 세옹지마라고 했던가요, 자동차 사고의 확률을 운운하며 운전도 겁나서 하지 않는 사람이 암에 걸리다니 말입니다. 암도 치료가 쉬운 일반적인 암이 아니라 까다로운 희귀암이라니요. 인생의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모습을 통해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혼자가 된다는 것,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벼움

 우리말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이죠. 아담은 설상가상으로 여자친구 레이첼(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분)이 바람을 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동안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뻔뻔하게 아담의 집에 살며, 같은 침대를 쓰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자신에게는 아담밖에 없다고 입에 발린 말만을 계속 해 왔던 것입니다. 아담은 암에 걸린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아이러닉하게도, 믿어왔던 여자친구보다 오히려 아담을 상담해주는 의사 캐서린(안나 켄드릭 분)이 더 아담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함께 회사생활을 하던 동료들보다 화학요법 병동에서 만난 암 환자들이 오히려 더 아담의 고통을 나누려 노력합니다. 믿어왔던, 혹은 곁에 있던 사람들 보다도 오히려 새로운 진실한 만남에서 위로를 얻는 아담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관계를 이용하는 누군가의 이름이 떠오르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상황, 위기 상황이야말로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시점입니다. 나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들의 진심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유쾌하다

 영화 [50/50] 속에서 아담의 곁을 계속 지키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바로 아담의 친구 '카일(세스 로건)'입니다. 우스꽝스러운 농담이나 하는 친구지만 그는 아담을 진심으로 대하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아담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나름의 최선을 다합니다. 말로만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 그의 여자친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죠. 카일은 아담에게 농담을 던지면서 뒤로는 암 관련 서적을 읽으며 아담의 고통을 나눌 방법을 찾는, 아담에게 있는 유일한 진짜 친구입니다. 그의 입담을 통해 영화 [50/50]는, 유쾌한 영화가 됩니다.



 어쩌면 감독이 영화 [50/50]에서 관객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카일'의 유쾌한 위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카일처럼,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가장 친한 친구의 위로처럼 따뜻한 그 무언가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몫은 언제나 존재한다

 비록 암병동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아담을 상담해주는 의사, 그리고 유쾌한 친구 카일이 아담을 위로해주고 있지만, 영화 [50/50] 속에서 아담이 겪는 고통은 그 누구도 함께 느낄 수 없습니다. 오롯이 아담이 홀로 견뎌내야 할 부분입니다. 아담은 모든 암 환자들이 겪듯, 분노와 절망, 신체적 고통을 느끼며 조금씩 절망에 익숙해져 갑니다. 상담의 캐서린에게 절망감과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고, 친구에게 못할말을 하기도 합니다. 가능성이 불투명한 수술을 앞두고는, 마치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억눌렸던 감정을 분출합니다.


 아담은 말합니다. "난 그냥 끝나버리길 바랬어. 난 망할 아픈거에 지쳤어. (I just wanted to over. I'm so fuckin' tired of being sick.)"



 세상 어떤 사람도 자신이 겪는 괴로움과 고통을 함께 겪을 수는 없기에, 자신이 감내해야 할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힘이 듭니다. 그 고통이 아담과 같은 암의 고통일수도, 혹은 다른 종류의 정신적 고통일수도 있겠지만 이런 고통들을 자신이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만이 감당할 수 있는 자신만의 몫이죠.




 낡은 듯 하지만 여전한 권선징악의 메시지

 착한 사람은 승리하고 나쁜 사람은 결국 진다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는 이 시대에 사라진지 오래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권선징악의 낡은 메시지를 좋아하며, 영화 [50/50] 속 아담의 모습을 보면서 착하게 사는 아담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은연중에 기대하게 됩니다. 감독의 의도대로, 많은 관객들의 바람처럼 아담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납니다.



 우리는 영화 [50/50] 속의 아담에게 일어난 것 같은 좋은 결과가 모든 불치병 환자들에게, 모든 착한 사람들에게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착한 사람들이 병동에서 불치병으로 죽어갑니다. 많은 착한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착취당하고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현실세계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 [50/50]속에서 우리와 같이 평범하지만 불치병을 이겨낸 아담을 보면서 희망과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아마도 지금 지쳐있는 우리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이런 영화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현실은 희망적이지 않더라도 말이죠.




 영화 [50/50]의 한글 자막을 첨부하면서 글을 맺습니다. 자막은 원작자의 자막을 수정 없이 재배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50-50 KOR sub.s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