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edia/영화

선셋 리미티드, 지성과 논리에 대하여 (한글자막 첨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글자막은 포스트 맨 하단에 있습니다.)

 논리적 대화는 항상 말장난으로 호도되기 마련입니다. 사실 요즘은 논리적 대화라는 것이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다르면 호도하고, 비난하기에만 급급하죠. 하지만 영화 [선셋 리미티드]는 조금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셋 리미티드]는 이 시대의 모든 대학생들, 지성인들이 꼭 봐야 할 영화입니다. 사실,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런 토론류의 영화를 싫어하는 분들께는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 지루할테니까요.)





 영화에는 단 두 사람만이 등장합니다. 바로 '백인'과 '흑인' 두 사람 뿐입니다(심지어는 크레딧에도 'BLACK', 'WHITE'로만 소개합니다). 두 사람 모두는 주연이면서, 대화의 주체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백인'은 방금 전에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려고 했고, '흑인'은 그 백인을 구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흑인의 집에 앉아서 대화를 나눕니다. 배경은 바뀌지 않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같은 자리에서 계속 대화를 이어갈 뿐입니다.





 두 사람은 삶과 죽음, 이 세상에 대한 견해가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견해가 어떻게 다른지와 관계없이 대화는 계속됩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둘 중 누구도 화를 내거나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영화 [선셋 리미티드] 속의 대화는 언뜻 말장난하는 것 처럼 들리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논리적으로 대답하고 질문하고, 설득하려 노력할 뿐이죠.





 영화 [선셋 리미티드]에 깔린 대전제는 성서과 신의 존재 여부입니다. 이 주제는 몇 세기를 걸쳐, 혹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늘 논리적 결론으로 도달하지 못했던 주제입니다. 백인은 이 시대의 무신론과 적극적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장 죽는 것이 합리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하죠. 흑인은 유신론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인의 자살을 막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견해에 대한 의문과 반론을 제기할 뿐 상대에게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비록 [선셋 리미티드]의 대전제가 유신론 및 무신론에 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좀 더 깊은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단지 유신론이 맞다 무신론이 맞다의 이야기로 끝날 내용은 절대 아닙니다. 영화 [선셋 리미티드]는 '이상적인 대화와 토론의 자세를 갖춘 상반된 두 견해의 대면' 정도로 표현 할 수 있습니다. 내용 자체가 이상적이라기 보다는, 자세가 이상적이라는 뜻입니다.

 영화 [선셋 리미티드] 속 상반된 두 사람의 견해는, 두 사람의 상반된 피부색, 상반된 색상의 의상, 상반된 직업, 상반된 말투 등으로 강렬하게 대비됩니다. 심지어는 사용하는 컵도 흑과 백으로 나뉩니다. 한 공간에 있지만 절대 섞이지 않는 두 상반된 이미지들의 대비는 두 사람의 상반된 견해와 일치하는 상징적인 장치들입니다.





 하지만 이 상징적인 장치들을 배제하고라도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영화 [선셋 리미티드]가 상업적인 것에 치중한 수많은 영화들에 비해 좀 더 훌륭한 사색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선셋 리미티드]는 자본주의 속 무분별한 소비문화에 물들어있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바로 그것, 철학적이고 변증적인 사고에 대한 희미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영화 [선셋 리미티드] 속 백인은 토미 리 존스가 연기했고, 흑인은 사무엘 L. 잭슨이 연기했습니다. 토미 리 존스가 직접 기획하고 감독한 영화이며, HBO Films에서 제작한 TV무비입니다. HBO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 [퍼시픽]등의 걸출한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평가지만, HBO의 저력은 단순한 예산투입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것 같네요. [선셋 리미티드] 역시 이 두 배우들에 대한 가치를 더욱 높여준 영화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선셋 리미티드]는 유신론이나 무신론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영화를 관람하는 관찰자 모두에게 훌륭한 사색거리를 던져준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상업영화들의 화려한 비주얼과 관심끌기식 연출에 이골이 난 영화 팬들이라면 [선셋 리미티드]를 감상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영화 [선셋 리미티드]의 한글 자막을 첨부하면서 글을 맺습니다(번역하신 분 정말 고생하셨을 것 같네요).


늘 그렇듯, 자막은 원작자의 자막을 수정없이 배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The.Sunset.Limited.2011.720p.BRRip.x264.AC3.5.1.smi